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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유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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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전도 연구소 소장 안환균목사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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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증명 - 신은 존재치 않는다


안티기독교인들의 오랜 단골 공격 메뉴, 그러나 답은 있습니다.|

이기가 바이트님께서 제기하신 논리적 증명 - 신은 존재치 않는다 이 문제는 요즘의 안티기독교인들이 가장 오랫동안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주제인데, 아마도 답을 온전히 다 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릴 문제일 것이기에 여기서는 우선 간단히 생각나는 대로 요점만 몇 가지 나눠봅니다.


1.

우선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서론 격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신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신을 믿지 않겠다면 어디로 가서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먼저 환기시켜놓고 싶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 외에 성경 기독교가 가진 역사성과 차원 높은 신학적 진리체계는 다른 그 어느 종교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들 인간의 철학이나 사상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 자체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확고하게, 적어도 그 논리체계 안에서라도 경험적으로나 역사적인 증거 면으로나 확고하게 해결했다고 주장하지 못합니다.


만약 석가모니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역사적으로 그 자신이 죽지 않았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유일하게도 무덤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만인 존재는 결코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독특한 기독교만의 신학이며 복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진리를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진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인격, 모든 권세와 능력과 영광 면에서 똑같이 동등한 한 위격 되심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고유의 정체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질적으로 무한한 차이를 갖는 것이기에 그저 ‘주’라거나 ‘메시아’라는 명목상의 위치 정도로 예수님을 인류의 죄를 구속하신 구세주로 믿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은 극한 우상숭배의 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큰 이단이며, 그러한 사람은 기독교의 복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끝까지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기독교 변증의 큰 사명이기도 하지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하리라"(사 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


2.

만약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기독교 신학을 먼저 이해하고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작고하신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성경적 지식은 중요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신은 없고 그 밖의 다른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걸 모른다면 그 신은 없는 신이나 다름없고 차라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신을 믿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은 내가 기독교 신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만 해결하게 되면 진짜 신으로 받아들여질 확률이라도 가장 가능성 높게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증거로나 다른 모든 면에서 월등합니다.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으로 이모저모로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관련 있고, 이슬람교인들이 자신들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까지(그들도 구약성경의 일부를 코란에 포함시키기에) 마지못해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 신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수적 측면에서도 확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이 가진 어떤 한 측면의 오해 때문에 물리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도 큽니다.


이런 지적 기반을 소홀히 하고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하고 기독교문화에만, 그 분위기에만 젖어 살면서 세상에 한 발 교회에 한 발 들여다놓고 살아갈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위기나 시련이 닥치면 이전에 전혀 기독교인이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돌변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치관은 전혀 변화된 것 없이 세속문화를 좇아 살아가는 세속적인 기독교인으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게 되든지요. 사실 오늘날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안타깝고 이로 인해 복음전도, 변증전도가 효과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3.

기독교 신학을 성숙하게 공부하고 이해해나갈 때 성경 속의 하나님, 기독교에서 믿고 있는 그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성경적으로 오해를 풀고 온전한 신앙을 갖게 되는 부분과 관련하여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부족한 대로 일단 이 이슈에 대한 대답을 여기서 멈추기로 합니다(이 부분에 대해 좀 다른 측면에서 보충하여 설명을 들으시려면 제가 이미 부분적으로 답한 내용, 즉 자유게시판 61번에 있는 ‘느긋한 오후’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밑에 하나님은 살인해도 좋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변증"이 아니라 "변명" 이라고 봅니다’에 대한 답변 글입니다).


이기가 바이트 님께서 언급하신 구약성경의 구절들 중 한 구절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고자 하는데, 이 부분 한 가지만 기독교 신학적으로 제대로 조명되어도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잔인한 행동처럼 보이는 것이 왜 자연인으로서 인간의 잣대로 판단할 윤리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기독교 신학적인 앵글로 봐야 하는 것인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한두 가지 예를 보면 철없는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려 대자 엘리사는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고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그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고 한다. 엘리사가 베델로 가는 도중에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며 놀려 대었다. 엘리사는 돌아 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사십 이 명을 찢어 죽였다. [열왕기하 2장 23~24절]-


이 구절을 액면 그대로 보면 엘리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말 무자비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행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좀더 본문 속으로 들어가서 기독교 전체의 성경신학적인 맥락에서 본다고 할 때 이 구절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구절이 됩니다.


먼저 이 구절을 정확히 현재의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어보면 23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 2:23-24).


여기에 나오는 ‘작은 아이들’은 개역성경에 ‘젊은 아이들’로 번역되었고 영어 NIV 성경에는 ‘youths'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가리키는 원어 히브리어는 ’나아르‘인데 이는 ’소년‘, ’젊은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본문을 놓고 신학자들은 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하는 내용과 엘리사의 저주의 성격을 놓고 볼 때 이들은 ’젊은 청년‘이 분명하다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단순히 어린이였다면 엘리사에 대항할 만한 영적 지각력이 없었을 것이고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 본문에 나오는 것 같은 잔인한 저주를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학자들 중에도 본문에 기록된 저주가 매우 잔인한 방법에 의해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비윤리적이라고 보거나 그 역사성을 의심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인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 ‘젊은 청년들’을 저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엘리사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멸시하는 이스라엘 온 땅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엘리사가 대머리라는 자신의 신체적인 약점을 장난삼아 놀리는 아이들에게 충동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른 행동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은 명백하게 엘리사가 선지자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조롱하여’ 말했기 때문에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습니다. 이 사실에서 그가 단순히 자신의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뜻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을 신학적 앵글로 보지 못하면 이 대목의 뜻이 결코 제대로 읽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논란을 일으킬 만한 사건을 굳이 구약성경에 기록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배우고 그들도 이 부분에 대해 깨어 근신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언약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문제는 하나님께 매우 심각한 죄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기록된 사건입니다.


젊은이 42명을 암곰이 와서 찢어버린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잔인해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상숭배의 죄를 인간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로 보시고 있다는, 언약관계 안에서 하나님 편에서의 사랑(질투)과 공의의 심각성을 그러한 잔인해보이는 방법으로, 그런 생생한 그림으로 드러내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사실 인간은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하며 살아야 할 피조물로, 그분의 창조주 되심의 권위를 인정하고 살아야 가장 행복한 것인데, 인간들이 이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기에 그것을 바로잡아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합당하고 인간에게도 최고의 선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기독교 신학의 전체 지평과 맥락 가운데서 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인간의 상식적인 시각만으로 보면 얼마든지 오해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부당하신 거 아니냐는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안티기독교인들이 이 문제를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거의 매일 여러 가지 성경 속의 예를 들어가며 줄기차게 성토해오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런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많은 순수한 젊은이들의 인간적인 의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성경에 내재해 있는 기독교 신학 전체를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공의 없는 사랑은 맹목이고 사랑 없는 공의는 공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때로는 잔인해 보일 만큼 심판하십니다. 악이 더 이상 창궐하지 못하도록 노아의 대홍수가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있었습니다(물론 그 전까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인내로 기다려주시는 시간도 가지셨지요).


한 쪽 다리에 균이 올라 그대로 두면 전체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럴 때 잔인해보이지 않으려고 그 다리를 무자비하게 잘라내지 않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이 보기에 잔인하게 심판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신학적 의미를 두시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 곧 사랑과 공의의 뜻에 따라 행하시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지 않고 그래서 심판하지 않고 봐주시면 하나님이 공범자가 되고 죄인이 되실 겁니다. 이 땅에서의 심판은 지옥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시는 분인가를 아주 조금 보여준 데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공의와 사랑을 아무렇게나 축소하거나 타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이 문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명령하는 것도 주제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죽하면 지옥을 만들었을까요? 그러나 인간들을 지옥에서 건지시려고 가장 잔인한 심판을 십자가에 달린 외아들 예수님께 행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속성을 모두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에서 왜 잔인해 보이는 방법으로 인간들을 심판하고 언약 백성을 징계하고 형벌하셨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로마 총독 빌라도가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4-25)라고 말했지요. 신학자들 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말한 데 대한 대가로 그들은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줄곧 디아스포라 방랑자들로 온 세계에 흩어져 핍박받다가 독립하기 전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나 학살당하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잔인한 참상까지 경험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곧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큰 사랑을 역사적으로 명백하게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독생자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들이 훗날 어떤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되는지를 이 땅에서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는 예언으로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2천년 역사의 전모를 정확하게 미리 예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인류 각자, 우리 각자에게도 이러한 엄청난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이 전제된 공의의 심판의 경고를 내리고 계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글이 부족하나마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떼르뚤리아누스 님의 물음에도 어느 정도 답변이 되길 기대해 보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성경 속의 독특하신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안환균 드림.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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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라님의 댓글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솔직히 조금은 기대를 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읽는것에 인내심이 필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머리위에 멤도는 한마디...
기독교인들은 다~~~~~~~~~~~똑같다!! 입니다!
안환균씨의 글은 안티들에게 하는 답변이 아닌,
결국은 같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전도성 글수준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죄송하지만 누가 쓴 글인지 모르고 글만 읽었다면 성경은 진실님의 글로 착각할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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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sun님의 댓글의 댓글

rainysun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신의 존재를 변호하는 글에서 논리를 바라시다니.. ^^;;;;

"훈장"을 하나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먹사로 보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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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라님의 댓글의 댓글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emoticon_009

그러게요!!!.....
저분이 음냐리님의 토론에 응하는 조건으로 예의, 존중, 권리를 제시하는것을 보며 뭔가 다르려나? 하는 마음으로...
저사람의 카페에 가서 글들을 읽어 보았어요...
기대한 제가 잘못이지....
그저 훈장을 하나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목사에 불과하다는 썬님의 말씀이 딱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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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안티이다님의 댓글

no_profile 나는안티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일이 다 답변하려다가 아, 내가 뭔생각하는겨 그러고 안씁니다.
반박 할 가치를 못느끼겠어요.ㅠㅠ 죄송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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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그로밋님의 댓글

no_profile 거대그로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논리적 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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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안마님의 댓글

no_profile 회전안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양반은 또 뭐하시는 분이레요...emoticon_011

참,여러가지들 한다.emoticon_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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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위거님의 댓글

no_profile 안티위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병추요.(안환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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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구님의 댓글

마시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저도 기독교인으로써 안환균 목사님의 변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보았는데 가장 원론적인 논리적 증명이 빠져있는것 같네요. 앞으로 더 연구할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철학에서 단골메뉴인 신 > 유일신 부터 시작을 해야함이 옳을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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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을 논하는 것이 철학인가요..??

철학의 사전적 의미부터 볼까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학문 그 자체를 의미하였고,
전통적으로 철학은 세계와 인간, 그리고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 의미에 대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천착을 뜻했다.
이에 더하여 현대철학은 전제나 문제의 명확화, 개념의 엄밀화, 명제들 사이의 관계의 명료화 등 철학적 사고를 통하여 제 주제에 관해 논하는 언어철학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신을 논하는걸 철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는데,
이를 논하는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님의 글에서 "원론적인 증명" 이라는 말을 쓰셨는데,
님의 주장은 그 원론적인 증명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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