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서의 같은 구절을 마태서와 비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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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서의 같은 구절을 마태서와 비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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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마가 2;23~28>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태12;1~8>
앞서 마가서를 읽고 예수의 신격화에 대한 과정을 “인자의 의미”에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태서의 같은 구절을 읽어보면 마가서의 관점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다.
아니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서두,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라고 해서, 예의 다윗의 고사가 적용될 기초를 만들고 있다.
동시에 마태는 구약에 정통해있었기 때문에 마가서에서 말한 대제사장의 이름인 아비아달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그 이름을 삭제하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못해 교활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가서 27절의 결정적 선언인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를
완전히 빼버리고 있다.
또한 예수를 성전보다 더 큰 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가서에는 없는 그리스도론 적 시점을 도입해서
그것과 관련시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선언을 그리스도론 적으로 주장한다.
게다가 그 사이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라고 전혀 위상이 다른 논리를 가져온다.
요컨대 마태는 예수를 성전보다 위대한 자, 율법과 예언의 완전한 성취자, 메시아 그리스도로 창조해내고 있다.
여기서 예수는 분명히 신과 동등한 주(主) 라고 고백하는 초인적 존재로 만들어지고 있다.
<누가 6;1~5>의 경우에는 본질적으로 마태서에 의거하고 있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마태서와 같은 생각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누가서의 경우에는 유대인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성전보다 위대한 자 라는 표현을 지워 버렸다.
그냥 평범한 기록이다.
여기에서도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가서에서 마태서로, 그리고 누가서로 종교화, 추상화, 교양화되는 과정이 분명히 읽히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비판적인 이해를 계속해 간다면, 적어도 마가서 속에서 전통적으로 그려져 온 예수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가 그 나름대로 떠오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의 분명한 목적에 의해 신격화돼 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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