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해 > [구]자유토론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구]자유 토론

2015년까지 사용했던 자유토론 게시판입니다. 글 읽기만 가능하오니 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대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다연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163회 작성일 14-07-10 01:02

본문

1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마가 4;1~13)(마태 13;1~)(누가 8;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제가 아는 어느 기독인은 성경의 문제구절을 제시하면 성경은 모두 비유로 쓰였기 때문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이 분과의 에피소드는 다음에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지만, 여기서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창세기(4;14~15)에서 당시 단 3명만 존재해야할 인간세상에서 가인이 다른 사람의 죽임을 두려워하는

장면을 지적하며, 이는 이미 사회가 형성된 시점에 쓰인 증거라고 하자, 그 기독인은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최초로 선택한 인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당시엔 이미 다른 수많은 인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ㅎㅎ

어쨌든,

위 글의 이 부분은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1~9절), 비유를 사용해서 얘기하는 이유(10~12절),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13~20절)하는 3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1~2절은 마가의 편집구로 보인다. 거기에는 엄청난 군중이 예수 옆에 모여들었다고 하는 마가 특유의 표현이

두드러 진다. 이 군중의 강조는 마가서에서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10~13절) 과의 대비로써 생각된다.

 

그런데 비유라는 것은 뭔가를 확실히 하기 위한 예증으로써 사용되지만, <3;9>까지의 비유에는

그 뭔가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만큼은 이 비유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그 때문에 15~20절 같은 설명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설명은 당시 마가의 주변에서 널리 퍼져있었던 얘기로 생각된다.

 

11~12절은 제자들에 대해 남아있던 다른 전승이다.

당시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제자들은, 자기들은 처음부터 예수의 직제자들이었고,

특별히 선택 받은 사도들이며,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비전을 받았으므로,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그런 자부심과 자랑이 전승화 된 것이다.

 

이 전승에다 마가는 10절을 가필하여 그런 특권적인 사람들인 12명과 함께 예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언급한다.
 
이것은 엄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전에 12명이 사도로서 선택 받았지만<3;13~19> 그들은 물론,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든 추종자들이 사도들의 권위에 기대면서 그들 이외의 사람들을

외인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게다가 정중하게 구약을 인용하면서까지 외인들을 멸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마가는 13절을 삽입해서 말한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고.

이는 분명히 사도들에 대한 단호한 비난이자 비판이다.

 

마태서의 같은 구절<13;10~17>은 이 마가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10우선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묻는다.

여기서는 마가서의
12명과 함께 예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배제되고, 제자들만으로 한정되어 있다.

 

여기서 살그머니 예수에게 다가가 소곤소곤 질문하는 제자들의 이미지는 추접스럽고 음험하다.

그 제자들에게 예수는 말한다.

11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라고.

12절의 있는 자 운운하는 것은 본래 전혀 다른 전승이었는데, 이런 것까지 채용해서 제자들의 특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다짐하듯이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라고 선언한다.

이래서는 제자 이외의 사람들은 거의 단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제자들에게는 아주 특권적인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래서 마가가 13절에서 가필한 제자들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마태의 경우에는 물론 삭제되어 버렸다.

 

누가서의 같은 구절<8;9~10>은 마태서에서 볼 수 있는 치사할 정도의 제자 찬미에 질린 것인지,

그것을 전부 삭제해 버렸다. 여기서도 등장하는 것은 제자들만으로 한정되고, 마가서의 13절도 삭제되어 있다.

대단한 편집력이다.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그런데 고래의 그리스도교회는 이 비유 해석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로 해석해 왔다.

그것은 <마가 4;14>의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의 해석과 관련된다.

공동번역에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으로 돼 있는데, 원문에는 하늘나라가 없다.

원문에 없는데 이런 첨가를 해서는 안 된다.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과 그냥 말씀이라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번역은 이미 역자가 제멋대로 덧붙여 해석한 것이다.

 

아무튼 교회가 이 비유를 하나님 나라의 비유로 해석해 온 것은 마가서에서 말씀이 뿌려졌다고 돼 있는데,

마태서에서는
천국 말씀이 뿌려져 있다고 바뀌어 있으며<13;19>, 게다가 후에 교회가 신약의 정전을 정할 때

제일 오래된 마가서를 맨 앞에 두지 않고, 이런 식의 해석(기독교가 주장하는 정통적 해석)을 하는 마태서를

맨 앞에 두었기 때문에, 읽는 쪽이 그것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마태가 그처럼 바꾸었는가 하면, 마태는 마가의 말씀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를 하지 못했으며,

마가서의 자라는 씨앗의 비유<4;26~29>와 겨자씨의 비유<4;30~32>에서 하나님 나라가 언급되기 때문에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도 모두 천국에 대한 비유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태는 그들 비유를 전부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로 13장에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앞에 말했듯이, 14절에서 갑자기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고 말한다.

이 로고스라는 말의 용법은 절대용법이라고도 하고, <1;45><2;2>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또 <1;21>의 가르침, <1;27>의 권위 있는 새 교훈과도 중복되고, <1;38>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라고 말하는 경우의 내용이기도 하다.

공동번역의 필요 없는 하늘나라를 덧붙여서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 이라고 하거나,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교단적 도그마티즘에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는 이 비유를 천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가 라는 신앙적 해석으로 비켜 놓는다.

그런 해석은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13;19>

라는 표현에 단적으로 나타난다. 이 악한 자라는 해석은 바로 그 뒤의 가라지 비유<13;25~30>에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교단적 해석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마음에 뿌려진다는 마태적 표현은 마태 특유의 내면화, 종교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본래 단적으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누가 6;20> 라는 심한 역설적 분노가 함유된 표현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 5;3>라는 내면화된 종교성으로 변해버린 발상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마태서에는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지 어떤지가 중심 주제가 돼버린 것이다. 마가서와의 차이가 확연하다.

 

누가서의 경우,  씨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8;11>

그리고 그것을 믿고 구원을 얻는지 어떤지<8;12>, 잠깐 믿다가 배반하는 자<8;13> 등이 중심 주제가 된다.

그 문맥 속에서는 15절의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라는 것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여, 그것을 믿고, 확실히 지켜내는지가 주된 내용이 돼버렸다.

 

이와 같은 마태나 누가의 해석에는 자기들은 이미 올바른 신앙을 받아들여 지키고 있다고 하는 태도가 명료하고,

자기들이야말로 진리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그에 따라 타자를 평가, 판단하려고 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진지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오만한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345건 19 페이지
[구]자유토론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895 시사 in 이름으로 검색 2279 12-18
2894 no_profile 시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21 12-18
2893 no_profile 시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91 12-16
2892 황폐 이름으로 검색 2413 12-16
2891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0 12-15
2890 megod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3 12-13
2889 no_profile 시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56 12-12
2888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49 12-10
2887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71 12-07
2886 개독박멸 이름으로 검색 2601 12-07
2885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03 12-06
2884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35 12-02
2883 no_profile 회전안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35 11-30
2882 no_profile chamchi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51 11-30
2881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42 11-27
2880 no_profile 시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81 11-26
2879
명언?? 댓글3
no_profile 냥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90 11-25
2878 no_profile 트릭썬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76 11-24
2877 no_profile 트릭썬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7 11-24
2876 no_profile 시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1 11-24
2875 여운형 이름으로 검색 2617 11-22
2874 megod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31 11-22
2873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735 11-21
2872 no_profile Danpyu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91 11-20
2871 호기심 이름으로 검색 2382 11-20

검색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얼른 천국 가라"는 말은 축복일까요?, 욕일까요?


• 안티바이블 •

• 본 사이트에 게재 된 이메일 주소가 자동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하여 처벌 될 수 있습니다.
 
• 본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컨텐츠(이미지, 게시글등)는 사이트의 재산이며,
저작권과 상표권을 규율하는 관계 법률들에 의거하여 보호 받습니다.

• 접속자집계 •
오늘
6,432
어제
6,885
최대
9,843
전체
1,809,657
Copyright © 2010-2021 antibible.co.kr. / antibible.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