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따른 다는 것은? > [구]자유토론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구]자유 토론

2015년까지 사용했던 자유토론 게시판입니다. 글 읽기만 가능하오니 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따른 다는 것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다연 이름으로 검색
댓글 8건 조회 2,372회 작성일 14-05-28 02:17

본문

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마가서 3;7~12>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우선 처음 7절에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많은 사람이 따라왔다. 고 한다.

마가는 분명히 이
따르다는 말을 갈릴리에서 온 군중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8절에서 갈릴리 이외의 많은 지역에서 온 군중에 대해서는 그냥 나아온다(모여들었다)고 만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들 군중에게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들은 그 정도의 세력으로 예수에게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마가가 왜 갈릴리에서 온 군중과 다른 지역에서 온 군중을 구별했는지는 이 부분에서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냥 나아온다는 말과 예수를 따른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갈릴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소위 변방이었고, 지역민이라 불렸던 가난한 유대인이 살고 있었으며,

갈릴리에서는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식의 멸시받는 곳이었다.

그 갈릴리에서 온 민중은 예수를 따라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9절은 원문대로 번역하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군중 때문에 배를 가까이 준비하라고 말했다.

그들이 자기에게 밀어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 된다.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명하는 것과 상당히 뉴앙스가 다르다.

 

10절에서도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고 한다.

갈릴리에서 온 군중이 이미 예수를 따르고 있었지만, 그 후부터 다른 지방에서 엄청난 군중이 밀려왔다는 이미지이다.
 
이 상황은 2가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하나는 갈릴리를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상황이 일반 군중에게 얼마나 억압적이었는지를 알리고 싶어 하는 이미지이다.

 

다른 하나는 갈릴리에서 온 군중도 처음에는 다른 지방에서 온 군중과 마찬가지로, 그냥 예수에게 치료받는 것만을
 
원해서 몰려들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들이 예수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절에서 보면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다고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 마가는 그
래서 이들 군중이 모두 치료 받았다고 첨가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여기서의 이미지는 예수가 군중으로부터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뒤의 11절에서는 갑자기
더러운 귀신들 이 나온다.

더러운 귀신들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고 한다.

그리고 예수는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마가는 그들 갈릴리 이외에서 온 군중들이 더러운 귀신들이라고 암시하는 것 같다.

 

[현대적인 시점으로 보면 우스꽝스럽고 너무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지만 여기서는 본문의 내용만 가지고 다루고자 한다.]

 

마태서의 같은 구절을 보면 마가서와의 차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2;15~21>

 

여기에는 마가서에서 볼 수 있었던 갈릴리를 강조하는 시점은 완전히 빼버렸다.

다만 많은 군중이 따랐다. 고 할 뿐이다. 진짜 평범하다.

그리고 예수에 의한 치료를 구약 이사야의 예언 성취라고 말하고, 예수를
신이 택한 종, 신의 마음에 기뻐하는 자,

신이 사랑하는 자, 이방들도 그의 이름을 바란다
고 그리면서 찬미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마가서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더러운 귀신에 대한 기사가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다.

 

누가서도 마태서와 마찬가지로 마가의 갈릴리를 강조하는 시점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모든 지방에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엄청난 민중이 왔다고 할 뿐이다.

그리고 더러운 귀신에게 고통 받던 사람들도 치료 받았다고 평범하게 덧붙이고 있을 뿐이다.

마가서에서
따르다오다의 차이, 더러운 귀신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문제성 등은 전혀 이해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마가 3;7~10>과 <누가 6;17~18>을 비교해 보면 누가가 마가의 본문을 얼마나 마음대로 뜯어고쳤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누가 6;17~18>. 

 

 다음을 보자.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마가서 3;13~19>

 

소위 공관복음서라 불리고 있는 이들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놀랄 수밖에 없다.

도저히 공관이라고도 공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가서에서는 바로 이어서 12사도가 선택된다.

우선 예수는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현재형)라고 한다.

성서협회의 개역개정 번역에는 위와 같이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로 돼 있고, 공동번역에는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셨다. 고 돼 있는데, 역시 단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자들 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원문에서는
예수가가 강조되어 있으므로, 그 자신이 라고 강조해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즉 여기서는 예수가 자신이 주체적으로 그들을 선택했다고 하는 말이 강조되어 있다.

 

게다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가 현재형으로 되어 있는 것도 중요하다.

바로 뒤에서
나아온지라.(나아왔다) 고 하는 과거형이 사용되기 때문에,

이 현재형에는 특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읽어야 한다.

마가는 예수가
부르시니 라는 행위를 항상 현재의 일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에서 열둘을 세우셨으니,

라는 말은 너무 과장된 느낌이다. 14절의 다른 번역본을 보자.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새번역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사도로 삼았다는 말은 많은 사본에 나오지 않는다.

권위와 정평 있는 신약 최종판인 Nestle-Aland (네슬 알란트)판에도 없다.

마가서에서 사도(Apostle)라는 표현은 <6;30>에서 한번 사용되고 있을 뿐이며,

그 경우에는 문자대로 보냄을 받은 자들 (내보내다, 파견하다는 뜻의 동사 apostolos에서 유래)이라는 뜻이다.

그 때문에 마가의 의도는 제자들이 여기서 후대의 교회가 위엄을 갖추어 사용한 사도로서 뽑혔다는 것에

역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후에 사도로 불리게 된 12명의 제자들이 선택된 본래의 목적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있다는 말은 생전의 예수와 함께 있다는 말이지, 예수를 유일한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는 말은 아니다. 즉, 예수와 함께 예수처럼 산다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1;38>에서 예수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와 같이

예수만으로 한정된 행위가 아니고, 제자들에게도 나누어 준 공동의 행위이다.

여기서도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언어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은 쫓는다고 하는 행위로써 말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있다는 말과 내보낸다는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2개의 말이 같이 쓰이고 있다.

즉 예수와 함께 있다는 말은 예수를 따른다는 말로 연결되며, 그것은
보냄을 받고, 예수처럼 행동한다는 말이다.

 

이 말과 관련하여 흥미 있는 것은 마태서에서 제자의 권위에 대해 전개되는 부분이다.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태 19;27~28>,<누가 22;30>


마태서에서는 또 베드로가 교회의 초석으로 세워지고, 천국의 열쇠를 받는다<16;16절 이후>.

어느 쪽도 마가의 이해와는 전혀 맞지 않게 바뀌어 버렸다.

베드로가 초능력을 갖게 되는 배경이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사람답게님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위 성서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의 바이블 연구서 대부분은,
바이블을 "수시로 첨삭된 문서들의 모음" 또는 "개인 신앙 고백서"들 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신학대학이라는 곳은, 사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로 지칭하곤 합니다.

그래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먹사가 되는 사람들 보다는
성서연구쪽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그나마 양심적(?)이라고... emoticon_001

아무튼,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 놓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족속들이 먹사들이지요.

법률용어를 보면, "사기죄"에 대해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상대를 기망하는 행위.."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천국, 지옥 타령을 하는 것은 분명 사기 행위 일 뿐인데...
최근 구원파 신도들의 주장인, "종교의 자유"가 문제지요..

profile_image

chamchi님의 댓글

no_profile chamchi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점점 심오해지는군요. emoticon_156
아무튼 이렇게 복음서마다 관점이 달라지니 이단 삼단 마구 나올 수밖에요... 원래 경전이 그러니 뭐.

profile_image

뫼르소님의 댓글

뫼르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심오하긴 개뿔~

병을 치료한자들을 본 시점과 이후에 몰려든 군중에 대해서 피한 시점을 나누어서 보면 될 것을...

본문 텍스트에서 맹정은 바리새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예수가 병을 고치는 장면인 것이여. 복음서 전체를 보면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지....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맨날 헛소리 할 수밖에...

또 한가지 관전 포인트는 종교지도자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예수가 오히려 민중을 선동하거나 아우를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역설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지...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그 정도 텍스트 분석도 하지 않았겠냐?

profile_image

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얘야..

전지전능한 신이 왜 적을 만들어야 했고, 왜 피해야 할까..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 신이 무슨 걱정이 있었을까..
차라리 그자리에서 적에게 죽고 바로 부활하면 오히려 더 멋져 보일 수 있는거 아녀...??

생각좀 하고 살기 바래..

profile_image

뫼르소님의 댓글

뫼르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자유가 행복과 양립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같이 단세포는 알리가 없겠지!

인간이 원하는 행복은 물질적이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메시아! 그런 메시아는 민중의 평등을 위해서 모든 인간의 삶의 가치를 법제화 시키고 정신적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걸 예수는 해줄수 없지!

민중이 예수를 신으로 삼으려고 몰려드는 것은 결국 빵과 기적을 원하는 것이며 정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 까지 어리석은 민중은 영원한 자유를 포기하려니까 신이 피할수 밖에.

빵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중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죽은 것이 바로 (전지전능)함이라는 것을 네놈이 알리가 없지. 이것은 자유와 행복에 관한 그리고 인간본성에 관한 본질적 문제니까.

참고로 니이체의 권력에의 의지와 사도바울의 자유의 종을 한 번 곰곰히 숙고해 볼 것을 권면한다. 니놈이 그럴거라 희망하진 않지만.

profile_image

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유와 행복이 양립하지 못한다..????
이걸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자유로움도 행복의 한 방법 아녀..??

하긴, 너같은 개독 머리로는 이분법 밖에 모르겠지..ㅋㅋ

profile_image

뫼르소님의 댓글

뫼르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러니까 네놈이 나에게 단세포 소릴 듣는거다.

네놈이 말하는 행복은 기껏해야 너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확립한( 이 부분에서 굳이 영혼을 얘기하지 않으마) 행복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또는 네놈의 혈육들이 선점한 행복일 것이다. 네놈이 나의 댓글에 반응을 나타내는 수준을 보면 더 깊이 물을 것도 없지...

네놈은 행복을 어떻게 규정할지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직장에서 월급을 좀더 올려주면 그 월급으로 장가가서 마누라와 애새끼들 데리로 행복을 느끼는 그러면서도 건강하게 사는...아마 그런 정도일 것이다. 거기에서 좀 더 발전하면 무슨 거룩한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의 발전과 인류애를 발동시키면서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또는 양심의 일말에 죄책감을 털기위해 기부정도 하고 하겠지....

이런 행복과 자유는 네놈이 기껏해야 실존주의의 한 인간의 정형으로서 살다가 죽어버리는 행복이겠지.

profile_image

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얘야..

영혼이라는 것의 정의를 내려봐..

근거가 없는 내용을 주장하는 넘이니까, 한심하다고 하는거여...

Total 3,345건 22 페이지
[구]자유토론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820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29 10-07
2819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0 10-07
2818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56 10-07
2817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90 10-07
2816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90 10-07
2815 .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883 10-06
2814 no_profile 그레이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2 10-07
2813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01 10-06
2812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83 10-06
2811 no_profile 성경은소설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24 10-05
2810 no_profile 성경은소설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36 10-05
2809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91 10-05
2808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68 10-03
2807 no_profile 성경은소설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21 10-02
2806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4 10-02
2805 no_profile 성경은소설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 10-01
2804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10 10-01
2803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69 09-29
2802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15 09-25
2801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67 09-23
2800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00 09-23
2799 no_profile 시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23 09-21
2798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55 09-21
2797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86 09-17
2796 망했다 이름으로 검색 2684 09-16

검색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얼른 천국 가라"는 말은 축복일까요?, 욕일까요?


• 안티바이블 •

• 본 사이트에 게재 된 이메일 주소가 자동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하여 처벌 될 수 있습니다.
 
• 본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컨텐츠(이미지, 게시글등)는 사이트의 재산이며,
저작권과 상표권을 규율하는 관계 법률들에 의거하여 보호 받습니다.

• 접속자집계 •
오늘
6,461
어제
6,885
최대
9,843
전체
1,809,686
Copyright © 2010-2021 antibible.co.kr. / antibible.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