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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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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댓글 3건 조회 5,258회 작성일 11-11-1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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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영국 일간지 2011년 5월 15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다.”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의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을 인터넷 댓글을 통하여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의학박사 제프리 롱은 지난 10년간 1,300개 이상의 임사체험한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이유로 변했다. 굳어진 콘크리트처럼 절대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나의 과학적 세계관이 다른 말로 하면 편협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과학’의 영역이라고 규정한 그 작은 원 안에서 세상을 보려 했던 나는, ‘실!제! 사!람!들!’의 경험을 목격했다. …… 그것은 바로 ‘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사람은 영원한 존재이며 장차 우리는 우주적으로 활동하는 생명체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나누어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자신을 육체로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자신을 육체와 영혼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조그마한 차이이지만 나중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크게 벌어진다. 먼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어느 한 사건을 통하여 이 두 종류의 사람에게 얼마나 큰 차이점이 발생하는 지를 조명한다.


Ⅱ. 자신을 육체로만 본 사람과 육체와 영혼으로 본 사람의 차이


예수님이 인류의 죄값을 하나님 앞에서 지불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그의 양쪽 옆에는 각각 한 사람씩 진짜 죄를 범한 행악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자신을 육체로만 본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을 육체와 영혼으로 본 사람이었다. 자신을 육체로만 본 사람은 무신론자이었다. 자신을 육체와 영혼으로 본 사람은 유신론자이었다.


1. 자신을 육체로만 본 사람


첫 번째 행악자는 땅만 바라보며 살아온 존재이다. 땅만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는
‘나의 존재는 육체이며 육체의 죽음은 곧 나의 존재의 종결’이라는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 육체가 죽은 다음에는 무덤에 들어가서 썩어버리는데 그런 상태로 있는 존재에게 무슨 하나님이 필요하고 심판이 필요하게 되는 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땅만 바라보며 그것만 인식하고 살았던 첫 번째의 행악자는 어느 듯 유물론자이며 무신론자가 되어버렸다. 그에게 있어서 생물의 모든 세계는 우연히 저절로 되어진 세계에 불과하였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세계가 조금도 자리 잡고 있을 곳이 없었다. ‘시체로 되어버린 존재를 심판하여 보았자 시체가 아닌가? 시체에게 무슨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땅만 바라보며 살아온 그에게는 수많은 인류의 조상들의 무덤들만 보이면서 그의 영혼에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시체가 되어있을 뿐이라는 것에 세뇌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곧 육체이며 죽으면 그뿐이라는 관념에 지배되어졌다.

첫 번째 행악자는 또한 전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할 필요조차 느끼고 있지 않았다. ‘육체가 죽으면 흙이 되어버리고 ‘나’라는 존재는 ‘무(無)’가 되어버리는데 무슨 회개가 필요하단 말인가?’ 첫 번째 행악자는 회개하는 것이 어리석게 여겨졌다. 그는 육체의 생명으로 자신의 존재는 끝이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 자신과 두 행악자(우리)의 육체를 십자가에 달려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는 육체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놓여나게 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행악자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여기고 있었다. 그의 말속에는 예수님께 “너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네가 무슨 그리스도이냐? 거짓말을 하지 말라. 육체가 죽어버리면 우리의 존재는 끝장나는데 너도 꼼짝없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리고 있지 않는가? 네가 그동안 그리스도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죽어 가는 마당에 그리스도로서 한 것이 무엇이냐? 너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만일 네가 그리스도이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 보라.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거짓말쟁이 이었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며 조소하고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 행악자의 견해이었다.

마치 스티븐 호킹이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다.”라며 기독교인들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며 우롱하듯이 첫 번째 행악자의 눈에는 예수님이 거짓말쟁이에 불과한 존재로 보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임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첫 번째의 행악자의 마음에는 그의 존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 형성될 수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신 분을 업신여기면서 죽음 속으로 들어갔다.

예수님은 묵묵부답으로 계셨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성경에는 첫 번째 행악자가 낙원에 갔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다. 첫 번째 행악자는 예수님과 단절될 수밖에 없는 관계이었다. 예수님과의 단절은 곧 그의 지옥행이 되고 있었다. 그의 존재를 돌볼 자는 아무도 없었다. 구세주까지 그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의 존재는 멸망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 첫 번째의 행악자는 자기 죄를 그대로 짊어지고 저 세상으로 달려갔다. 그에게는 그의 죄의 문제를 처리할 자가 없었다. 그의 영원한 처소는 지옥이 되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에서 보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무신론자들에게는 구세주가 왜 필요한지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이 없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내용에 해당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는 단지 육체이며 진리가 있다면 육체는 결국 무덤 속에 들어가서 썩어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현실이 계속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과학적인 사실이다. 구세주가 있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구원을 받은 자는 영생의 모습으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어야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든지 마음문을 열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는 이 땅에 없다. 구세주가 왜 필요한가? 자신을 육체로만 본 사람은 하나님도 없고 구세주가 왜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죽으면 끝나는 인생,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최고일 뿐이다.


2. 자신을 육체와 영혼으로 본 사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었을 때에 그 옆에 있었던 두 번째의 행악자는 자신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는 자이었다. 그는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눅 23:41). 두 번째의 행악자는 자신이 나쁜 일을 행하였기에 십자가에 달리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잘못하였다는 것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겸허하여졌고 십자가에 달린 것을 억울하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이며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자이었다.

두 번째의 행악자는 하나님이 정녕 계시다고 믿고 있는 유신론자이었다.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눅 23:40).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경우는 그가 하나님은 정녕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무신론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유신론자이었다.

두 번째의 행악자는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1). 그 행악자는 예수님 시대에 살고 있었던 존재이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도 그의 스승을 팔아넘기고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통탄하였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배반하였던 가룟 유다조차도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시인하며 아무 죄도 없는 그를 죽음에 넘긴 죄는 너무 크다며 자살하고 말았다. 두 번째의 행악자도 예수님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면서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두 번째의 행악자는 자신의 존재가 육체의 죽음이후에도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의 왕이 바로 옆에서 같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이신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 간구하였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두 번째의 행악자는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육체가 죽어가는 마당에 그래도 자신의 존재가 있을 곳이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서는 비록 행악자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평가는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박사들은 나타나서 예수님께 왕이 나셨다며 경배하였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는 두 번째의 행악자가 예수님께 “당신은 진정한 왕이십니다”라고 선언한 사람에 해당한다. 이로 인하여 예수님은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에 처음과 나중에 인간으로부터 “당신은 왕이십니다”라는 선언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 두 번째의 행악자는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기에 자신의 존재를 책임질 수 있고, 왕은 나라가 있는 분이니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달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인류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의 존재를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왕이신 것을 실지로 밝혀준 주인공이다.

예수님은 즉각 두 번째의 행악자에게 반응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두 번째의 행악자는 유신론자이었으며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여겼던 창조론자이었다. 그는 자신을 육체의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영혼의 측면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육체가 죽는 순간에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에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통합적으로 있지만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된다. 육체와 영혼은 차원이 다른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영혼과 육체를 확실히 구분하며, 영혼은 불멸하며 죽을 때에 육체라는 장막을 떠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서 영혼이 사람의 주된 부분임을 강조했다.


3. 진정한 구세주이며 왕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요청한 사람에게 그의 나라의 실체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의 나라는 낙원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사람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알아야할 필수적인 문제에 해당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100년 안에 70억명 이상이 죽게 된다는 것이 실제 상황에 해당하는 일이다. 모두가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으로서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은 나는 어떤 존재이냐는 것과 내가 죽은 다음에 나는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두 번째의 행악자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 자신이 가서 있을 곳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두 번째의 행악자를 낙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만일 성경에 성인군자를 예수님이 낙원에 데리고 가는 것을 표현하였다면 악하게 살다가 마음을 돌이킨 사람은 소망이 없다. 공식적으로 행악자로 인정된 자를 예수님께서 낙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 표현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성인군자를 낙원에 가게 한 것이 표현되지 아니하고 행악자를 낙원에 가게 한 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표현된 것은 인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버린 존재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선상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이러한 발표를 하실 수 있는 분은 인간의 육체의 죽음이후에 되어지는 일에 대한 진상을 소상히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권자가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너는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하여서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며 십자가에 못박아놓은 존재를 예수님은 누구이시기에 그를 낙원에 있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행악자 자신이 행한 수많은 죄악의 문제와도 상관이 없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낙원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이로서 동방박사들이 막연하게 왕이라며 경배를 한 분의 실체는 지옥에 가야 마땅할 행악자도 낙원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분이셨다. 그는 우리의 존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권자이신 것을 십자가상에서 직접 보여주고 계셨다.

우리는 대부분 육체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사고방식으로 있다. 그러나 그 행악자와 예수님 사이에서는 육체의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들은 육체의 죽음으로 그들의 존재가 끝난다는 사고방식에 묶여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영원한 존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육체가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그들이 대화하고 있는 내용을 눈여겨보라.

행악자 :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예수님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몇 시간이 되지 아니하여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시체만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영혼이 낙원에 들어간 것은 보이지가 않았다. 이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도 죽는다. 우리가 죽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여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체를 무덤에 넣어주는 일뿐이다. 요즈음에는 대부분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존재를 낙원으로 데려가서 영원히 살게 하여줄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진짜 왕이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1 19:19:49 시사,개독관련뉴스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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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불리한 내용은 답변을 하지않고,
자꾸 화두를 바꾸는 건가요.???

박 전도사님..!!

다른 책의 내용을 들어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고,
신의 감동에 의해 씌여졌다는 바이블이나 똑바로 보기 바랍니다.^^

공부를 할때도, 교과서가 우선이지,
참고서만 본다고 실력이 오르겠수...???  emoticon_001emoticon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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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위거님의 댓글

no_profile 안티위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ㅋㅋㅋㅋ 이건 뭐 소설쓰는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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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님의 댓글

no_profile 그레이브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냥 요점만 간단히 하세요.
어짜피 가소로운 예수 맹신 멍멍이 소리인데 같지도 않게 장광설은...
멀쩡히 제 정신 가진 사람과 근거도 없고 쓸모 조차 없는 예수 구라나 쳐 먹는 정즐 놓은 예수 맹신자로 나눌 수 있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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