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화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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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원시적 신화들과 상징들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건전하고 비윤리적인 수많은 무지를 전달한 종교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고" 라이홀드 니버와 같은 신학자는 말한다. 그러나 칼 바르트 같은 신학자는 천지창조에서 부터 예수의 부활까지가 모두 신화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신화를 통해서만이 기독교의 진리에 접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근거가 신화인것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기독교를 어떻게 처리 해야 할까하는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보수적인 신학자인 칼 바르트 조차도 기독교의 근거가 되는 신화를 역사나 사가(saga)로 인식 할 때 이성의 붕괴가 일어 난다고 지적한 셈이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화의 원시성과 비윤리적 무지를 자각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의 근거가 신화인것 조차도 외면함으로서 두 신학자가 지적한 위험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창세기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자!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위의 구절을 잘 살펴보면 고대 유대사회의 원시성을 유추 할 수 있다. 첫째로 야훼가 "우리"라고 말함으로서 다신지배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야훼가 우리라고 칭한 신들은 적어도 영생하는 존재들이었다고 말하는 셈이다. 신들은 선악을 아는 존재라고 야훼는 말하고 있다. 즉 신이란 좋고 나쁜것을 아는 존재라는 뜻이다. 사람도 만약 선악을 알게 된다면 즉 좋고 나쁜것을 알게 된다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불사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 이 신화는 지배계급을 신성화했던 고대사회의 자취을 보여준다. 고대 유신론 사회에선 지배계급이 곧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배계급은 복수로서 표현함으로서 절대군주제인 왕조체제가 아니라 집단 지배체제인 종교귀족지배 체제였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의 선악과 신화는 피지배계급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금기시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금기는 법치주의가 생기기 이전의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억압의 기제이다. 오히려 법치주의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금기 매카니즘은 생물학적 구조로서 내재되어 있다. 모든 억압 즉 형벌주의는 죄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죄의식을 원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야만성과 비윤리성의 시초이다. 기독교의 최후의 신화는 예수의 육신부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포이에르 바흐의 지적 처럼 명백하게 죽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표현한 무지이다. 영의 부활 즉 생명의 항상성에 관한 부활은 그노시스(영지주의)의 사상이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영지주의 조차 말살함으로서 기독교가 말하는 영은 오히려 유물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는 몸의 부활을 스캔달이요 부조리요 종교적 물질주의요 거침돌이라고 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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