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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아는 어떻게 생존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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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Fundamental Questions arise?

왜 근원적 질문이 올라오는가?

You see, in the beginning there was no mind.

처음에는 마인드가 없었습니다.

The need for survival created the mind.

생존에 대한 욕구가 마인드를 만들어냈습니다.

Like you have to develop a fight or a flight response in order to survive, and you need a computer to handle that,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투쟁과 도피반응'을 만들었고 그것을 다룰 컴퓨터가 필요하듯


and that’s when the mind emerged. 그때 마인드가 등장을 한 것입니다.

And the mind in order to survive has to keep going.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마인드는 계속 무엇을 합니다.

It has to be continuously engaged in activity of becoming.

무엇이 '되기' 활동을 끊임없이 펼칩니다.

I am poor. I must become rich. There is becoming. 나는 가난해. 그래서 부자가 되어야 해. 여기에 ‘되기’가 있습니다.

I am not famous, I must become famous. There is becoming. 나는 유명하지 않아. 그래서 유명해 져야 해. 여기에 ‘되기’ 활동이 있습니다.

I am unhealthy, I must become healthy. There is becoming.

나는 건강하지 않아. 나는 건강해 져야 해. 여기에 역시 ‘되기’ 활동이 있습니다.

Unless there is continuous work, continuous becoming, the mind will collapse. Because the mind is only the activity of becoming. 끊임없는 마인드의 작업과 끊임없는 되기 활동이 없다면 마인드는 무너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마인드는 오로지 ‘되고자’ 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So now, when certain things do not interest you, you start asking fundamental questions.

그러다 무엇인가 더 이상 흥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근원적인 질문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Otherwise the mind will perish. So you must ask such questions where you cannot find the answers.

그렇지 않으면 마인드는 무너집니다. 그래서 당신은 대답을 찾을 수 없는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됩니다.

So, “Who am I?” Clearly you can’t find answer for that through the mind, and

“나는 누구인가?” 분명 당신은 마인드를 통해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Who created God?” “Is there a God or not?” “When did this universe begin?”

“누가 신을 창조했는가?” “ 신은 존재하는가? “ “언제 이 우주가 시작되었는가?”

Or, “How big the universe is?” Or, “Who created God?” These are irrelevant questions.

아니면 “ 이 우주는 얼마나 클까?” 또는 “누가 신을 창조했는가? “ 이것들은 적절하지 못한 질문들입니다.

But then they have no answers.

그것에 대한 해답도 없습니다.

As since there have no answers throughout your life or throughout your lives, you can go on seeking the answers.당신의 이번 생을 통해서도 아니면 다음 몇 생을 통해서도 해답이 없기에 당신은 계속해서 그 해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What happened to the Buddha? He had everything in life.

부처님에게 무엇이 일어났습니까? 부처님은 삶에서 모든 것을 가지셨습니다.

He was a prince, he had seven fifty (750) dancing girls to entertain him. He had three palaces.

그는 왕자였고 그를 즐겁게 해주는 750명의 무희들이 있었습니다. 왕궁도 있었습니다.

Yet after his child was born he left all that and went away because there was nothing for him to seek.

하지만 자식을 낳고 나서 부처는 그 모든 것을 떠나셨습니다. 더 이상 추구할 게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Therefore the fundamental question the Buddha was grabbed by was, “What is the ultimate truth?” That was the whole thing.

그때 “절대적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이 부처를 사로잡았습니다.

And what did the Buddha discover? He discovered that there is no such a thing as the ultimate truth. That was his enlightenment.

그리고 부처는 무엇을 발견하셨을 까요? 절대적 진실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이 부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So, you raise these questions in order to survive, in order that the mind survives.

그래서 마인드가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그런 근원적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For example the question, “Who am I?” Who are you? Who are you?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Because all of you must be asking sometime the question, “Who am I?”

왜냐하면 여러분도 이런 질문 하셨을 겁니다. "나는 누구인가?"

You are the Atman?

아트만이라고요?

So you will of course find in the script-xures, “You are the Atman, you are one with Brahman.”

물론 경전에 그렇게 쓰여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트만이다. 당신은 브라만이다.“

Some say, “You are one with God.” Some say, “Oh, no you have to live with God.” This and that.

누군가는 "당신은 신과 하나입니다." 라고 하고 누군가는 "당신은 신과 함께 살아야해요." 라고 하고 이것 저것을 말합니다.

But actually who are you? You are that question.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그 질문입니다.

That’s all. By asking that question, “Who am I,” you are surviving, that’s all.

그것이 다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당신은 살아남습니다.

There are no answers to these questions. The question would disappear, and when the question disappears, you disappear. That is all.

이 질문에 대답은 없습니다. 질문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집니다. 그게 다입니다.


And what did the Buddha discover? He discovered that there is no such a thing as the ultimate truth. That was his enlightenment.

그리고 부처는 무엇을 발견하셨을 까요? 절대적 진실을 없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이 부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Venkatarama the boy asked the question, “Who am I?”

벤카타라마 라는 소년이 "나는 누구인가?"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 The question disappeared and Venkatarama went away, only Ramana (Maharshi) remained.

그 질문이 사라졌을 때 벤카타라마도 사라지고 오로지 라마나 마하리쉬만 남았습니다.

So also for everybody. So there are no answers to these questions.

모든사람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대답이 없습니다.

They are simply games, tricks played by the mind in order that it continues to survive.

왜냐면 지 질문들은 단순히 마인드가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게임이자 속임수입니다.

Because you have to survive and you have identified yourself with the mind.

왜냐하면 당신은 살아 남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 당신은 마인드와 동일시 해왔습니다.

But there are people who take no recourse to the mind. The mind comes in when required. Otherwise there is no mind.

하지만 마인드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인드가 필요하면 오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마인드가 없습니다.

When you are eating you are thinking about something else. When you are eating you should eat.

여러분은 먹으면서 다른 것을 생각합니다. 먹을 때는 오로지 먹어야 합니다.

When you are drinking you should drink. When you are relating to your wife you must just relate to her in the moment.

마실 때는 마셔야 하며 아내와 이야기할 때는 그 순간에 온전히 그녀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Where else you think of what you did yesterday, what should you do tomorrow.

그런데 보통 그 순간 어제를 생각하거나 내일 뭘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지요.

These are the mind’s games and therefore you do not ever relate to your wife, to your child, to anybody for that matter because the mind is all the time interfering and distorting what is happening.

이것이 마인드의 게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내 뿐아니라 아이들,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인드가 항상 개입을 하고 일어나는 일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Images come in. When you freshly got married there were not many images. Then very quickly images come in.이미지가 개입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하고서 처음에는 많은 이미지가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빨리 이미지가 개입을 하기 시작하죠.

They come in from society, from your parents, from everywhere, and through those images you look at your wife.

당신은 그 이미지로 당신의 아내를 봅니다 그 이미지는 사회로부터 당신의 부모님 ,그리고 어느 곳에서 당신에게 올 수 있습니다.

A beautiful relationship often gets destroyed the moment marriage takes place. Most of you are aware of it.

아무리 아름다운 관계였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는 순간 그 관계가 깨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 But now it’s put into framework called marriage. The father-in-law comes in. The mother-in-law comes in. Everybody comes in.

관계가 결혼이라는 틀 안에 갇혀버립니다. 시어머니가 등장하고 시아버지가 등장하고


The friends come in and it is a totally different image, and then the people don’t relate. The images start relating to each other.

친구가 등장하고 완전히 다른 이미지들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이미지끼리 서로 관계를 맺을 뿐입니다.

When images relate, there is no life in it. Why is there no life in you? You think you are living? No.

이미지가 관계를 맺을 때 그 안에 생명은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왜 생명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You are just managing to exist. That’s all. You are great escape artist. All of you have an MBA in the art of managing suffering.

여러분은 가까스로 생존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회피의 대가입니다. 고통을 회피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MBA학위를 딸 정도입니다.

So cleverly you are managing a little bit in family, little bit in money, little bit in fame, little bit here, little bit there. It’s good! I am not saying don’t do these things.

아주 영리하게 여러분은 집에서도 잘 ‘관리’를 하고 있고, 돈도, 틀 안에서도, 여기 저기서 그 동안 적절히 관리를 해왔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이런것들을 더이상 하지 말라는게 아닙니다.

I’m saying for Heaven’s sake do all these things. There is nothing that you can do. And thus you are escaping every moment from what is going on.

그저 이것들을 즐기며 하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도망만 치며 살아왔습니다.

If you are drinking coffee, that’s what is going on at that moment. If you’ll not escape from that act by thinking about something, you would know what it is to enjoy coffee.

커피를 마실 때 그 순간 커피만 마십니다. 무엇인가를 생각함으로써 그 행위를 피하지 않는다면 커피를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Then you are equal to a Buddha. When the Buddha was first asked after his enlightenment, “How do you feel Sir now?” and the Buddha said, “When I am eating a tangerine, I am eating a tangerine.” That is just only doing that. The mind has switched off. 그때 부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부처가 깨달음 뒤에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는 첫 질문을 받았을 때 “귤을 먹을 때 귤을 먹습니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인드의 스위치가 꺼져버린 것입니다.

Only people in whom the mind has been switched off, where thought has ceased, only they can say, “I am living.” \

마인드가 꺼진 사람들은 생각이 멈추게 되고 그들은 “나는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Because, what is thought? Thought is the flow of memory. And what is memory? Memory is always of yesterday. And what is yesterday? It is always dead. So death is flowing through you. That’s all

왜냐하면 무엇이 생각인가요? 생각은 기억의 흐름이고 기억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제의 것이고 어제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이미 죽어있습니다. 죽음이 당신을 통해 흐르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 And if you have to die to the past, that is real death. You come alive.

당신이 과거에 대해 죽게 될 때 그것이 진정한 죽음입니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You are alive to the moment. You could be eating a chili, a masala bara, or a dosa or watching a movie or relating to your wife - whatever activity you are involved in, you are really involved in it. That is when you start living. And you don’t live.

그 순간에 살아있게 됩니다. 칠리,도사 (인도음식) 를 진정으로 먹을 수 있게 되고 영화를 보거나 아내와 이야기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진정으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삶을 살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은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We are not saying give this up or give that up. No. We are just telling you experience reality as it is.

이것 저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That is when you are fully involved as a human being. That is the purpose of existence, the purpose of living. 그것이 인간으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존재의 목적이자 삶의 목적입니다.

But you are just living simply because you are afraid to die. Deep inside there is nothing but fear. Go inside layer after layer after layer. There is only fear at the core of your being.

당신은 그저 죽기가 두려워 단순히 생존만 하는 것입니다. 깊은 안으로 들어가면 오로지 두려움 뿐입니다. 더 층 안으로 들어가면 당신 존재 핵심인 두려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The fear that the mind has projected. And all the time you are escaping from that. Otherwise there is no meaning to your life. 그 두려움은 마인드가 투영한 것이며 늘 여러분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Every pursuit of yours is an escape from that core fear. And of course how you would escape is determined by the program. That’s what your lives are all about.

당신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실은 그 핵심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도망치는 지는 여러분의 프로그램이 결정을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실체입니다.

And what we are trying to do is to move you from existing to living. Once you start living, you are a happy human being. If people in the world are happy, it will be a happy world, isn’t it?

저희가 하려는 것은 여러분을 단순한 생존에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을 시작하면 아주 행복한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Can a happy human being harm others? He cannot. Only an unhappy human being who has pain inside himself could possibly harm another. Otherwise you just cannot harm another person if you are happy.

행복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로지 아픔 안에 있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행복한데 다른 사람을 해칠 수는 없습니다.

And if people all over the world become happy, it will become a happy world. And that is Heaven on Earth. But because we are unhappy, we are unhappy with our wives, we are unhappy with our children, we are unhappy with our parents, we are unhappy with our friends.

만약 전세계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이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상 낙원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현재 행복하지 않고선 우리 삶에서 행복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과 행복하지 않고 우리 부모님, 친구들과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All this, this collective unhappiness, all this collective violence is what manifest in the world as terrorism, as war and all of the conflicts. It is not that nations are responsible, politicians are responsible. No.

이 집단적인 불행함이 , 집단적 폭력성이 전세계적으로 테러, 전쟁,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 국가나 정치인이 책임 있는 것이 아닙니다.

That is only at the surface level. Deep inside we are responsible. We are unhappy human beings. We are beings who are in conflict with ourselves and in conflict with others.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레벨입니다. 깊은 곳에서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서 갈등이 있고 다른 사람과 갈등이 있습니다.

And that conflict is what is manifesting in the external world. So unless we as individuals transform ourselves there is no hope for mankind.

그 갈등이 외면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온 인류에 희망은 없습니다.

We had so many revolutions: the French revolution, the American revolution, the Chinese revolution, the Russian revolution, so many revolutions. But has man changed?.

인류는 많은 혁명을 겼어 왔습니다.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중국 형명 , 러시아 혁명 등등 많은 혁명들이 있었지요. 그렇다고 인류가 변화했나요?

No. That pain remains, the suffering remains, the violence remains in different forms.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 폭력성은 다른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Like earliest human beings wanted a spear or a stone. We want a car or an airplane. Desire remains. Object of desires change.

예를 들어 고대 인류는 창과 돌은 원했지만 오늘날은 차와 비행기를 원합니다. 원하는 바람은 그대로이나 바라는 대상물만 달라졌습니다.

He had fear of the tiger, you have fear of the share market. Fear remains. So it continues like that.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를 두려워했으나 오늘날은 주식시장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되지요.

So unless we transform inside there is no hope for us, or for our societies, or for our nations, or for the world at large 그러기에 우리의 내면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우리 국가에 ,세계에 희망은 없습니다.

왜 근원적 질문이 올라오는가(자아는 어떻게 생존하는가)- 슈리 바가반 질의응답 ㅡ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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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라님의 댓글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머리가 아파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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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od님의 댓글

megod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표면적 겉치레나 행동 관념등으로는 인간의 절대적 가치관은 변하지도않고

방황하면 밖으로만 갈증을 내고있습니다

스스로 자각하며 자신의 내밀한 부분까지 놓치지않고 관찰하고 나를 조복받는다면

그 사람은 아라한 이겠지요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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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님의 댓글

no_profile 눈사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경향성,원습이 소멸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자유란 결코 주어지질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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