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분설로 본 사람의 구조론 > 휴지통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휴지통

게시판 운영 규칙에 맞지 않거나, 사이트 성격에 맞지 않아, 타 게시판에소 이동 된 글들입니다.


삼분설로 본 사람의 구조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성경은진실
댓글 4건 조회 1,735회 작성일 12-03-03 22:02

본문


이분설로 사람을 볼 때에는 단지 물질적인 생명체와 비물질적인 생명체로 나누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삼분설은 사람의 구조를 한층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서 파악하게 한다.
마치 그냥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현미경으로 보면 또다른 세계를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은 현재 어떤 상태로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이분설로는 불가능하다.
삼분설의 잣대로 보아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후 5:23).

즉 우리는 몸과 혼이 다르고 혼과 영이 다르며 몸과 영이 다르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다차원의 존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내적 세계 곧 영혼이라는 것이 한 상태로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 14:12-14).

여기서 영과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마음을 혼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비물질계의 영과 물질계의 육체를 연결해주는 중심적인 역할을 ‘혼’이 담당한다고 여기면 되겠다. 이 혼은 사전적의미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정신이 그 사람의 주체요, 영은 하나님의 관계를 위한 본능적인 도구이고 육체는 물질계를 향한 도구인 것이다.”[박지호, “영, 혼, 육의 상관관계에 대한 성경적, 과학적 이해” (석사학위논문, 침례신학대학교 대학원, 2007), 125.]



1. 영은 나의 생명체



육이 자연계와 연결된 생명체이라면
영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체이다.
육은 모양의 생명체이며 영은 비모양의 생명체이다.

영이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체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심같이 영생이 있는 생명체이라는 것이다.

영, 혼, 육으로 되어진 사람의 생명체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영의 생명체이다.
이 생명체는 진정한 나의 생명체에 해당이 되기 때문이다.
조지 스티븐즈(George B. Stevens)는 다음과 같이 말하므로 자신의 영과 자아에 대해 비교해준다.

“인간의 영은 참된 자아보다 나은 자기, 그 안에서 그가 가장 하나님과 밀접한 혈연을 맺는 영적인 성품이다. 영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불멸의 세계와 연결시키는 인간의 비물질적 부분이다.”[Ibid., 135-6]

영적 생명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D. M. 로이드 존스, <영적 화해: 에베소서 강해 제2권>, 서문 강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2), 36.]

그런데 이 영의 생명체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아담과 하와는 정녕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
그 후로 그들의 진정한 생명은 죽었다.
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처럼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품에서 잘려나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현실적인 입장에서 생각하여 보자.
진정한 생명이 죽은 존재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존재의 실상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는 자신을 찾을 수 없다.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알 수가 없다.
왜 나는 내가 되어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가의 진실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영의 생명이 죽은 존재는 자신의 생명의 진실을 파악할 수가 없다.
지구인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생명의 진실을 알 수 없는 수준에서 생활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체 중에 가장 신경을 쓰신 것은 바로 영을 살리는 문제이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에게 생명의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7).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육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육으로만 태어나서는 안 되며 영으로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인 니고데모에게 알려주셨다.

사람이 유신론자가 되느냐 무신론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그의 심령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심령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심령인가에 달려있다.

육으로만 난 존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영으로 난 존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은 존재하고 있지만
눈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말씀과 같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인 생명체에 문제가 생긴 존재이다.
영이 죽었다.
내가 죽은 존재이다.



2. 혼은 나의 옷의 생명체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은 혼에 해당한다.
아담의 후손은 혼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다.
혼은 내 자신이 아니다.
혼은 영을 보호하는 영적 존재에 해당이 된다.
마치 육체를 보호하는 옷처럼 혼은 내 자신(영)을 보호하는 영적 생명체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마자 행한 일은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에 그들이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7)

영이 죽자 인간의 영혼은 혼의 역할이 커졌다.
혼은 자신의 존재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옷은 알맹이가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자신의 존재의 진실을 깨닫게 하지 못한다.
그 생명체는 무언가를 꾸며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에 열심인 옷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생각하여 보자.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인간은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옷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꾸며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존재들에 해당이 된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진실된 상황은 모르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무엇인가를 꾸며서 나타내기에 바쁘게 살다가 죽는다.

그래서 음악으로 명성을 날리다가 죽었다느니,
정치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죽었다며 아쉬워한다.
사람마다 어떤 일에 열심이었다는 레테르가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 표시가 된다.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인간 사회에서 그 사람의 대우와 평가는 달라진다.

한 마디로 옷 입고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존재의 가치가 평가 받고 있는 세계이다.
옷의 생명체로 살고 있는 인간의 사회는 생명 존중의 세계가 아니다.
옷이 존중되는 세계이다.

우리는 야구선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선수의 야구솜씨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의 미모, 능력, 부귀, 권세, 명예 등을 더욱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가 생명의 가치보다 물질의 가치를 더욱 귀중히 여기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이 옷의 생명으로 된 영혼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자 즉각 옷부터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 이후로 인간은 지금까지 옷 만드는 일을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옷은 잠시 걸쳐지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옷의 진리에는 영원성이 없다.
인간 사회에서 유통되는 진리는 변할 수 있는 진리이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오늘의 진리는 새로운 진리로 교체될 수 있다.
옷의 진리가 표현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옷의 생명체에 해당이 된다.

우리는 경제발전과 건설이라는 옷의 세계에 열을 올리지만
조금 후에 육체가 죽어버린 후에 내가 갈 길을 생각하는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저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3.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될 수 있는 인간 영혼의 구조



인간의 영혼의 상태는 어떠한가?
인간의 영혼은 내부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영혼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과 연결되었던 영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를 유괴한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현재 우리 자신의 존재의 생명인 영은 부모를 잃어버리고 유괴범의 손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부모의 품 안에 있는 아이는 평안함을 느끼지만
유괴범에게 잡혀있는 아이의 마음은 불안하다.

사람의 마음 중심 깊은 곳에는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처럼 자신의 창조자의 품을 떠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자기상실증에 걸리게 되어 불안이 계속하여 샘솟고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두운 연기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외적으로는 호화찬란하게 꾸미고 있어도 고요히 자신의 내면 중심 속으로 들어가면 어둠과 영혼의 갈증으로 시달리는 자신의 실상과 만나게 된다.
나에게 만족을 달라는 아우성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퍼진다.
이런 상황에 외적으로는 눈요기거리들이 울긋불긋하게 나의 허덕이는 마음을 만족하여 줄 수 있다며 수없이 유혹한다.

인간은 겉으로는 웃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짖고 있지만 그 영혼 깊은 곳은 시달림을 받고 있는 상태에 있다.
지구상에 쾌락산업이 엄청나게 번창하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영이 시달림을 당하는 동안
옷의 생명으로 있는 혼은 멋지고 좋은 나의 모습을 연출하게 한다.

훌륭한 인격자이며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하게 하고
나는 남보다 뛰어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면서 살도록 만든다. 남이 나를 무시하면 안 된다.

화장도 이쁘게 해야 한다.
내 분야에서 남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옷의 가치는 높아진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잡고 있는 옷의 분야에서 내가 얼마나 잘 꾸며놓을 수 있는 존재인가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나의 능력이 높이 평가 받는 것과 나의 존재의 문제는 다르다.
지킬박사는 옷의 생명의 노력으로 얻게 된 것이며 하이드는 절망에 빠진 나의 생명에서 “만족할 수 없는 나에게 만족을 달라”는 욕구를 처리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람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인간의 영혼은 싸움을 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될 수 있는 존재이다.
단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진 존재인가의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이 땅에는 완전한 지킬박사도 없고 완전한 하이드도 없다.

그런 상태의 존재는 천국이나 지옥에 있다.
완전한 지킬박사와 완전한 하이드는 내부적으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선택도 하지 않는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옥은 하나님의 뜻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곳이다.
그런 곳들에서는 선택이 없다.

지구는 선택을 하는 세계이며 우리의 영혼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 둘이 있어서 계속 어느 쪽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런 것이 있기에 인간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것이 지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4. 육은 나의 옷의 옷의 생명체



육은 영이나 혼보다 차원적으로 볼 때
낮은 차원에 속한 생명체이다.
영과 혼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지만
육은 시간과 공간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영과 혼은 자연계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지만
육은 자연계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영과 혼은 비물질이지만
육은 물질이다.

육은 나의 옷의 옷의 생명체에 해당한다.
육은 나의 생명체인 영에 걸쳐진 옷에 해당하는 혼에 걸쳐진 옷이다.
육은 나의 옷의 옷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시간 속에서 그 모양이 수없이 변한다.

한 살짜리 육과 열 살짜리 육은 다르다.
열 살짜리 육과 이십 살짜리 육은 다르다.
이십 살짜리 육과 오십 살짜리 육은 다르다.
오십 살짜리 육과 구십 살짜리 육은 다르다.
육은 오래 입으면 낡아지는 옷이다.
육은 매일 그 모습이 달라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육은 나의 옷의 옷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문제점은 시간 따라 늘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육을 바로 내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점이다.
육은 나에게 잠시 걸쳐져있는 생명체이다.
만일 내가 100살이라면 그 옷이 이제 너무 낡았다고 주글주글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나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지 않는 영원한 존재이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시간과 공간에 속한 육이라는 옷을 잠시 걸쳐 입고 활동하고 있는 존재에 해당이다.
마치 운전사와 자동차는 다른 존재이지만 운전사(영혼)가 자동차(육체)를 운전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영이 죽어서 자신의 존재의 진실을 알 수 없고
혼으로 살아서 무엇인가를 멋지게 옷을 만들듯이 만들어놓는 것에 성취의 만족을 누리며 지내다가 육체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인생허무와 무의미의 속에 빠지고 있는 존재이다.



5. 현재 나의 진정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세상은 우리의 육을 위하도록 꾸며놓아야 한다.
집들과 자동차들이 필요하다.
전기와 수도가 필요하다.
의류가 필요하다.

육은 우리의 혼을 위하도록 하여야 한다.
물질보다 정신을 더욱 귀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다.

“그에게 빛나고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8).

우리의 혼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장차 영원한 세계에서 우리의 영원한 옷을 아주 멋진 옷이 되게 한다.
사람의 혼은 옷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혼으로 옳은 행실을 하면 저 세상에서는 그것이 영원히 아름다운 나의 옷이 된다.
사람이 이 땅에서 나쁜 행실을 하면 저 세상에서는 그것이 아름답지 못한 나의 옷이 된다.
육체를 아름답게 하는 일보다 혼을 아름답게 하는 일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옷에 해당하는 혼은 무언가를 그 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
옷은 무엇에 걸쳐져 있어야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옷이 무엇인가에 걸쳐져 있지 않으면 옷의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다.
옷 안에 부귀, 권세, 명예, 쾌락, 인기, 자기능력 등을 넣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부수적이다.

그것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 있다.
혼은 나의 영을 위하여야 한다.
혼은 나의 옷의 생명이지만 영은 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받은 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혼 안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드리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예수 안에 있는 나의 영 곧 나의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 안에 있는 나의 영을 얻게 되는 것이 곧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영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영생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1-6).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영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다.
람의 혼은 나의 옷의 생명으로 되어있다.
육체의 생명은 나의 옷의 옷의 생명의 수준에 해당한다.

나의 옷의 생명으로 나의 생명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나의 생명(영)을 잡을 수 있는 생명은 나의 옷의 생명(혼)이다.
옷 안에 나를 넣어야 한다.

나의 생명인 영은 나의 본질적 생명이다.
나의 옷의 생명인 혼은 나의 기능적 생명에 해당한다.
우리는 현재 기능적 영혼으로 과학만능시대를 만들어놓고 있다.
과학만능시대라는 거창한 옷을 만들고 우쭐대는 것보다 영생이 있는 본질적 생명을 얻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육체의 죽음과 함께 우리가 건설한 과학만능의 세계는 우리에게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이 와도 본질적 생명을 얻은 존재는 천국에서 영원히 지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현재 천국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이유는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옷의 옷의 생명(육체)으로는 나의 생명을 잡을 수가 없다.
나의 옷의 옷의 생명은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물질의 세계만 잡는 존재이다.
육체로는 나의 생명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나의 생명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곧 육체이다."라는 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의 옷의 생명(혼)으로 나의 생명(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잡아야 한다.
나의 옷의 옷의 생명(육체)보다 더욱 귀중한 생명은 나의 옷의 생명(혼)이다.
그리고 나의 옷의 생명(혼)보다 더욱 귀중한 생명은 나의 생명(영)이다.

육의 생명은 부모님을 통하여 주어지지만
영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6-7).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이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에
그의 혼은 엄청 좋은 상태이었다.
니고데모는 인간사회에서는 우러러 보는 종교지도자에 해당하였다.

그런 그에게 옷만 깨끗하게 하는 수도생활이나 수양정도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고 사람은 영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가게 된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내용도 된다.

나의 옷의 생명(혼)으로 나의 옷의 옷의 생명(육)을 잡고 있는 존재를 육의 사람이라고 한다.
나의 옷의 생명(혼)으로 나의 생명(영)을 잡고 있는 사람을 영의 사람이라고 한다.

육의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렵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은 물질의 시각으로만 판단한다.
그 시각에서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그래서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의 사람, 즉 나의 생명을 찾은 사람, 곧 거듭난 사람은 무신론자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고 있는 아이는 “엄마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유신론자가 되는 것이다.

'또 안티들로부터 미친넘이라는 소리를 무수히 듣겠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하여 온다.
안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거나 사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체의 사건이 자기자신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전서 5 : 17)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6-7).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3-04 03:38:00 자유토론방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profile_image

케일라님의 댓글

케일라 작성일

진실님 정말 안되겠군요!
지금 저희들과 장난 하시는 겁니까?

이미 수도없이 저와 회원님들이 님께 말씀을 드렸고,
바로 밑에 거대그로밋님이 마지막으로 잘정리된 글을 올리셔서
더이상 님께 한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님은 예수를 믿는 광신도임을 떠나....
솔직히 먼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듯합니다!

이제까지 제가 님께 보였던 배려와 이해심도 한계에 닿았습니다.

profile_image

rainysun님의 댓글의 댓글

rainysun 작성일

지금 진실이는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스스로 흔들리기에.. 이런 식의 다짐만 반복하는.......

profile_image

사람답게님의 댓글

사람답게 작성일

같은 개독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글을 써대면,
안티가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건가요.?

이분설이고 삼분설이고간에 먼저 같은 개독들과 의견일치를 보기 바랍니다.

님의 경우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판단되는 바,
님의 글은 발견즉시 휴지통으로 보낼 것입니다.

profile_image

안티위거님의 댓글

안티위거 작성일

이뭐병이란 말조차 아까운 개독놈은??




















정답:성경은진실

Total 293건 7 페이지
휴지통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43 백마와호랑이 1724 03-07
142 백마와호랑이 1631 03-07
141 강감찬 1777 03-05
140 강감찬 1649 03-05
139 강감찬 2028 03-05
138 강감찬 1589 03-05
열람중 성경은진실 1736 03-03
136 성경은진실 2348 03-02
135 성경은진실 1572 03-01
134 rainysun 1904 03-01
133 관리자 1813 03-01
132 안티위거 2271 02-28
131 megod 1919 02-27
130 megod 2028 02-27
129 안티위거 1933 02-27
128 강감찬 1585 02-27
127 megod 3050 02-17
126 megod 1991 02-12
125 성경은진실 1652 02-07
124 안티위거 1749 02-08
123 안티위거 2521 01-31
122 안티위거 2349 01-27
121 성경은진실 1845 01-26
120 megod 2010 12-14
119 megod 3686 12-14

검색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얼른 천국 가라"는 말은 축복일까요?, 욕일까요?


• 안티바이블 •

• 본 사이트에 게재 된 이메일 주소가 자동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하여 처벌 될 수 있습니다.
 
• 본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컨텐츠(이미지, 게시글등)는 사이트의 재산이며,
저작권과 상표권을 규율하는 관계 법률들에 의거하여 보호 받습니다.

• 접속자집계 •
오늘
4,175
어제
6,885
최대
9,843
전체
1,807,400
Copyright © 2010-2021 antibible.co.kr. / antibible.kr. All rights reserved.